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2보병사단/사건 사고 (문단 편집) == [[조준희 일병 월북 사건|1984년 조준희 일병 총기난사 및 월북 사건]]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조준희 일병 월북 사건)] 1984년 6월 26일 오전 10-11시경 강원도 건봉산 까치봉에 있는 22사단 56연대 4대대 TOC상황실에서 522GP로부터 아비규환의 전화보고 소리와 수류탄 폭음이 들리며 사건이 알려졌다. 초기접보시에는 북측의 강습으로 판단했으나, 해당 GP 소속 상황병인 조준희 일병이 내무반에 수류탄을 투척하고 M-16 총기를 난사한 뒤 '''휴전선을 넘어 [[월북]]'''한 것이었으며 사건 바로 다음 날 조 일병의 대남월북권유 방송을 통해 조 일병의 월북 사실이 공식 확인되었다. 이 사고로 내무반에서 잠자던 사병들이 수류탄 파편과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지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특히 북으로 도주하던 조 일병을 뒤쫓던 13전초중대 수색대원들도 발목 [[지뢰]]를 밟거나 신병의 오발사고로 인해 현장에서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고도 추가로 발생했다. 이 사고와 관련하여 모두 '''15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해당 GP 신임 소대장 소위는 몸을 숨기고 있다가 살아남았으며 이 사건으로 당시 사단장 장기하 소장, 연대장, 대대장 곽근용 중령 모두 보직해임/전역 조치되었다. 최전방 부대로 강제 배치된 조준희 일병의 범행 및 월북 동기는 여러가지로 조사되었지만 [[대한민국 제5공화국]] 출범기였던 1984년 당시의 정치상황과 연계된 자생 공산주의자라는 설과 군대 내의 폭력 문화의 비극이란 설 두 가지로 압축되었다. 강제입대한 상황인데다 월북 직전에 휴가 때 여자친구와 이별하는 등의 행동을 볼 때 전자가 범행동기로 강력히 대두되었으나 조 일병의 대남 방송 내용에 따르면 군대 내 폭력이 원인인데 자신이 대학교를 다니다 입대한 것을 가지고서 선임병들이 [[데모]]하다 끌려왔냐는 식으로 비아냥대며 괴롭히고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제5공화국]] 당시에는 대학 교수의 승인하에 운동권 대학생을 강제 입대시키는 지도휴학 제도가 있었다. [[국군기무사령부|국군보안사령부]]가 학생운동을 와해시키기 위해서 주도한 일명 [[녹화사업(비밀 공작)|녹화사업]]으로 이는 역사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 이나 [[삼김시대]]에서도 묘사된다. 사건의 규모나 파급효과는 현재까지도 '''[[대한민국 국군]] 창설 이래 최악의 총기사고'''로 기록될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다고 볼 수 있지만 5공 정권하에서 보도가 통제되는 바람에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일반 군 사고로 처리되어 피해자들은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한편 동료를 사살하고 월북했던 조 일병은 월북 이후 '''매일 밤 [[대남방송]]을 통해 월북을 권유'''하는 방송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22사단 부대원들은 매일 저녁 전방 경계근무를 설 때마다 조 일병의 대남방송을 들으며 치를 떨어야 했다고 한다. 이후에도 북한 방송에 종종 나온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